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마 9세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미국]] 유학 중이던 아버지 마히돈 아둔야뎃 왕자와 어머니 시나가린드라(1900.10.21~1995.7.18)[* 아들 둘이 국왕이 되었지만 칭호는 왕대비(Queen Mother)가 아니라 왕대빈(Princess Mother)에 머물렀다. 남편이 왕자 신분으로 사망해 왕자비였을 뿐 왕비가 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. 1995년 94세를 일기로 사망.]의 차남으로 MIT와 하버드 대학등의 소재지인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[[1927년]] [[12월 5일]]에 태어났다. 마히돈 왕자는 학업을 마치고 1928년에 [[태국]]에 돌아왔지만 다음 해인 1929년에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. 시나가린드라는 가족들과 함께 1933년 중립국인 [[스위스]]로 이사했고, 푸미폰은 [[로잔]]에서 1945년까지 유학 생활을 했다. 친형인 아난타 마히돈 왕자는 1938년에 [[라마 8세]]로 즉위했을 때 대관식을 위해 태국에 잠깐 들렀을 뿐, 동생 푸미폰과 마찬가지로 학업을 마치기 위해 [[스위스]]로 돌아갔다. 라마 8세가 귀국한 시기는 [[제2차 세계대전]]이 끝난 1945년이었지만, 재위 1년 만인 [[1946년]] [[6월 9일]] 의문의 총기사고로 사망했다. 라마 8세의 사고 이후 동생 푸미폰은 [[1946년]] [[6월 9일]]에 라마 9세로 즉위했다. 라마 8세의 의문사에 관해서는 공식적으로는 사고나 자살이 아닌 타살로 판결되었으며, 해당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판명되는 3명이 처형됨으로써 마무리되었다. 푸미폰 국왕 배후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기는 하지만,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태국 사회에서는 금기시되는 주제이다. 라마 9세는 학업을 마치기 위해 [[섭정]]을 임명한 후 다시 스위스에서 유학 생활을 거쳤다. 이후 [[프랑스]] [[파리(프랑스)|파리]]를 방문했는데, 여기에서 주 [[프랑스]] [[태국]] 대사의 딸이자 자신과 [[오촌]]인 시리낏 끼띠야꼰을 만났다. 시리낏도 태국 왕족인데 국왕은 라마 5세 [[쭐랄롱꼰]] 대왕의 손자이고, 왕비는 라마 5세의 증손녀다. 한국식으로는 당숙-당질녀 관계. ||[[파일:external/322ab8de0ed685e7323ed041d2090aaa94be040d4c5454d57a2b5416a4bd91d9.jpg|width=400]]|| 라마 9세는 1948년 스위스 로잔에서 [[교통사고]]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았으나 이때의 사고로 오른쪽 눈을 [[실명]]하는 등 큰 상처를 입는다.[* 그래서 평생동안 오른쪽 눈에 [[의안]]을 끼우고 살았다.] 치료기간 동안 자주 병문안 온 시리낏을 사랑하게 되어 1949년 약혼하고, 즉위식 일주일 전인 [[1950년]] [[4월 28일]] 결혼식을 올렸다. 1956년에는 태국의 전통에 따라 [[불교]]도[* 태국 헌법에서는 불교 신자만 국왕으로 인정한다.]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단기출가를 하였으며, 그동안에는 시리낏 왕비가 [[섭정]]으로서 공무를 대행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